Page 27 - 월간붓다 2019년 10월호 (Vol 38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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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가 요구하는 평온의 통찰력
론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음
을 지적했습니다. 당시에는 불교 승려라면 마을과 사회
에서 떨어져 고립된 상태로 살며 수행하는 것이 옳다고
여겨지던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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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는 인도 망가로르 지역에서 열린 가톨릭 교
월간붓다
육자 연합 회의에 참석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무
릎을 치며 감동을 하였습니다.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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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지원과 체계에 기여 하는 바가 실제로 엄청나다는 월호
것을 상기시켜주었습니다. 저는 또한 그들이 강조하는
사람들을 섬긴다는 것이 종교인의 사명과 같음을 느꼈습
니다.
동시에 종교가 없는 이들을 본인들의 종교로 포섭시 상적으로 정립되고 신앙이 되었기에 그 목적 역시 사랑
키거나 타 종교를 신앙하는 이들을 지능적 수법으로 개 과 자비를 실천되어야 한다는 것이 저의 견해입니다.
종시켜 본인의 종교에 귀의하도록 하는 경우는 부정적으 제가 히말라야의 설산 왕국에 고립되어 살았을 때는
로 해석이 되었습니다. 종교는 방편적 수단입니다. 다양 영성과 전통 사이의 이해관계에 대한 필요성을 제대로
한 인류가 지닌 차이와 차별을 인정하고 조화롭게 화합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망명 이후 60년이 흘
하도록 하는데 종교는 장려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옳습 러 현재 우리가 영위하는 삶의 패턴을 봅시다. 물질적인
니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은 태생으로 어머니의 사랑을 개발에 치중할수록 인간은 서로를 소외시켜가고 있습니
근간으로 합니다. 종교는 인간의 안위와 필요를 위해 사 다. 인간은 마치 기계의 일부처럼 기능적인 존재적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