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8 - 월간붓다 2018년 12월호 (Vol 3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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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불교 이야기
번뇌니 업이니 하는 것은 다 무상하므로 그 자체의 영원성이 없다. 그래서 그것은 소멸시킬
수 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 선을 포함한 불교의 모든 학파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번뇌와 업은 우리들의 마음 씀씀이 때문에 생긴다. 마음만 쉬면 모든 번뇌도 가라 앉는다. 이
것이 바로 무심사상이다. 무심하여 인위적인 조작이 사라진 상태에서 나타나는 그것이 바로
불성이다. 그저 불성의 작용에 내맡겨 살아가면 이것이 바로 부처님의 삶이라고 한다. 그러
니까 사변적인 형이상학의 굴레에서 벗어나 단도직입적으로 깨달음을 구현해 보자는 것이 선
불교의 으뜸가는 이상이다. 그래서 선종문하에는 사량분별로 치닫는 교가의 이론을 엄히 단
속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조지눌스님은 교종의 입장을 끌어다가 선종에 뒤섞는다.
3.
선과 교를 한데 어우르는 작업의 완성은 규봉종밀(780~841) 선사에게서 이루어진다. 그 스
님은 자기의 이런 입장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육조혜능 선사의 제자인 하택사의 신회(670~762)
화상을 끌어들인다. 규봉 스님은 자신이 하택 스님의 바른 뜻을 이어받았다고 주장한다. 그
리하여 달마의 선종을 우두종, 북종, 남종으로 나누고 남종을 다시 홍주종과 하택종으로 나
눈다. 그리고는 달마 선종의 정통은 하택종이라고 한다.
사실 달마의 선종을 남종과 북종으로 나눈 첫 인물은 하택사에 살던 신회 스님이다. 당시에
대통신수(606?~706) 선사와 그의 제자 보적 스님을 물리치기 위해 이들을 북종이라고 깔보고,
자신과 자기의 스승 혜능 스님을 남종이라고 추켜세운 것이다. 분명한 것은 신회 스님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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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 선 불
이 기 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