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7 - 월간붓다 2018년 12월호 (Vol 3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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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불교 이야기 / 한국 선종의 종조를 다시 생각하자
한국 선종의 종조를 다시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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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다 붓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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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규탁 12 월 호
한국선학회 회장
1.
우리나라 선종역사 연구에는 풀어야 할 숙제들이 적지 않다. 이런 숙제를 해결하는 데에 고
려 말 최고의 선 수행자로 꼽혔던 태고보우(1301~1382) 선사의 선사상 이해도 중요한 몫을 차
지하고 있다. 흔히 태고보우 선사는 현재 태고종만의 최고 어른으로 아는데, 이런 오해는 현
재 조계종의 최고 어른으로 보조지눌 선사를 모시는 일과 얽혀 있다. 여기에는 우리나라 근
대사의 우여곡절과도 연관되어 있다. 태고 선사의 선사상은 임제종의 가풍을 잘 계승하고 있
는 반면, 보조지눌 선사의 경우는 변형된 선사상을 가지고 있다. 이 변형의 원인은 당나라의
화엄학자이자 선승인 규봉종밀과 연관되어 있다.
2.
우리는 당시에 선종이 왜 일어났는지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선종은 당시의 교학이론이 형
이상학적 사변으로 치달아 실질적이고 질박한 부처님의 본 모습에서 벗어난 점을 비판 반성
하면서 생긴다.
선종의 표어로 우리가 잘 아는 ‘불립문자不立文字, 교외별전敎外別傳,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
성불見性成佛’이 있다. 이 말은 문자나 언어에 의존하지 않고, 교학의 가르침을 넘어서는 마음
의 가르침을 전한다. 그리고 중생들 각자가 자신의 본마음을 철저하게 체험하여야 한다는 뜻
이다. 불교의 목적은 번뇌나 업장을 없애 열반을 누리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 번뇌는 어
떻게 생겼으며 어떻게 해야 그것을 없앨 수 있을까에 대한 많은 학설들이 나오게 마련이다.
열반에 대한 논의도 마찬가지이다.
여기까지는 좋다. 그런데 당나라 중엽에 접어들면서 번쇄한 화엄교학이 보태지고, 거기에
다 당시에 풍미하던 유식학자들이 구사하는 장황한 어휘까지 겹쳐서 오히려 깨달음을 구현하
자는 본질은 뒷전에 숨는다. 이런 상황에서 선불교가 내건 깃발이 바로 ‘불립문자 교외별전
견성성불’이다. 부모가 낳아 주기 이전부터 온전하고도 영원하게 그리고 모든 작용성을 갖춘
각자의 성품을 깨치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