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0 - 월간붓다 2018년 12월호 (Vol 3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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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의 샘물 길어올리기
담담하게 한해를 보내고 맞이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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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준
고전과 호흡운동연구실 <뿌리와 꽃>
한 해가 저물어 간다. 해놓은 것도 별로 없이 또 한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려하고 있다. 생각
해보면 그리 아쉬울 것도 없는데 뭔가 아쉽기도 하다. 서러울 것도 없는데 서글픔이 묻어나기
도 한다. 그냥 터벅터벅 걸어갈 일이다. 걷는다는 것조차 잊어버리고 걸어갈 일이다. 걷다보면
걸어지고 걸음걸음에 무심해지려나.
시 몇 수 감상하면서 읽어본다.
정온鄭蘊의 시이다.
凍雨霏霏灑晩天
차운 비 부슬부슬 내려 저문 하늘 씻기우는 데
동우비비쇄만천
前山雲霧接村烟
앞산의 연기와 맞닿는구나
전산운무접촌연
漁翁不識蓑衣濕
고기잡는 늙은이는 도롱이가 젖는 줄도
어옹불식사의습
閑傍蘆花共鷺眠
한방로화공로면 한가롭게 갈대꽃 곁에서 백로와 함께 졸고 있구나
찬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늦은 저녁 무렵의 하늘을 씻어주면서 말이다. 이 시가 지어질 무렵
에는 미세먼지 걱정도 없던 시절이었겠지만 미세먼지 나쁨상태도 넉넉히 씻어주었으리라.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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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의 운무가 저녁밥 짓는 마을의 연기와 서로 이어진다. 어떤 것이 연기이고 어떤 것이 산안개
고 전 의
인지 알 수가 없다. 그렇게 휘돌아 흐르면서 갈대꽃 옆에서 낚시질 하고 있는 늙은이 있는 곳까
샘 물 지 흘러간다. 너무 부슬부슬 내려서 도롱이가 젖는 줄도 아예 모른다. 백로와 함께 반은 잠들고
길 리 기 어 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