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1 - 월간붓다 2018년 12월호 (Vol 3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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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담하게 한해를 보내고 맞이하기
반은 졸음에 빠져든다.
멀리서 보면 어느 것이 갈대꽃이고 어느 것이 백로인지도 알 수 없다. 꼭 알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49
유동원의 유명한 시가 생각난다. 월 간 붓 다
千山鳥飛絶 12 호 월
천산조비절 일전 산에는 새가 나는 자취가 끊어졌고
萬徑人踪滅
만갈래 길에는 사람의 종적도 사라졌네
만경인종멸
孤舟蓑笠翁
외로운 배 위 도롱이와 삿갓 쓴 늙은이가
고주사립옹
獨釣寒江雪
홀로 낚시 드리워 눈내리는 차운 강에서 낚시를 하고 있네
독조한강설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봐도 새가 나는 자취도 보이지 않는다. 차운 눈만 내릴 뿐이다. 하염
없이 눈송이만 떨어져 내린다. 시선을 조금 낮춘다. 산기슭을 둘러봐도 사람의 종적을 찾을 수
가 없다. 개미새끼 한 마리도 보이질 않는다. 강가로 눈을 돌린다. 삿갓을 쓴 노인이 도롱이에
둘러쌓인 채 낚시를 드리우고 있다. 움직이는 모습도 아니고 딱 정지해있는 모습도 아니고 딱
정지해있는 모습도 아니다. 움직이지 않는 모습 속에 움직임이 들어있는 듯도 하고 움직임 속
에 움직이지 않는 낚시바늘이 물 속에 들어있다. 주변에는 눈송이들만 떨어져 내릴 뿐이다.
이제현의 시 속에는 들리지 않는 종소리가 마치 들려올 듯이 들어있다.
紙被生寒佛燈暗 종이처럼 얇은 이불에선 한기가 일고
지피생한불등암 불등佛燈은 깜깜하기만 하니
沙彌一夜不鳴鍾 사미스님은 하룻밤
사미일야불명종 종을 울리지 않았구나
應嗔宿客開門早 묶었던 나그네가 일찍 문을 연다고
응진숙객개문조 응당 화를 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