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4 - 월간붓다 2020년 1월호 (Vol 3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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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카페 13 / 통도사 ‘산중다원’에서
본분사 어긋날까 금강계단에서
마음결 헤아리다
●
이서연
시인
때로는 수많은 설명보다 침묵이 더 현명한 설법이 되고, 묵언만으로도
참선이 된다. 가슴으로 듣는 묵언의 설법은 영축산 능선을 타고 내려온 불
음佛音처럼 정확히 어떻게 살아야 정답으로 사는 것인지 궁금할 때 답을
얻게 한다. 인생에 답이 있을까마는 이런 고민을 한다는 것은 정답의 인
생이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 아니다. 살다 보면 쏟트리고 싶지 않은 말, 조
심 또 조심해도 어쩌다 하는 행동으로 실수를 하게 된다. 사람과 섞여 사
는 풍경 속에 그런 일들은 있을 수 있는 일이라 하지만 인간관계가 얽히
고, 얽힌 관계로 악연에 휘말리면 파열의 치명적 상처를 입을 때가 있다.
더 이상 그런 중생놀음에 휘둘리는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않아야 하는 게
지혜다. 그것을 위해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 시기엔
나를 돌아보며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나 조용히 자문하게 된다.
산수화 같은 영축산 도량에 위치한 통도사에는 산자락을 휘감고 내려오
는 바람결에 들을 수 있는 나만을 위한 법문이 있다. 30여 년 전, 비 오는
날 어둑한 저녁에 길을 잃은 가슴을 월하 큰스님께 쏟아낸 적이 있다. 찰
나의 통찰력으로 흔들리는 가슴을 꿰뚫어 보신 큰스님은 노란빛 안경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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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로 슬그머니 부드러운 미소를 띄우셨다. 그 미소에 풍경소리가 딸려 나
산사카페
오는 듯 했다. 생불이 와도 안 되는 시절인데 무릎만 닳도록 다닌다고 세
상문제가 풀리겠냐 하시는 그 미소를 보는 순간, 잠자던 정수리 쪽 뇌세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