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6 - 월간붓다 2021년 7월호 (Vol 4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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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식을 찾아서 / 허백 명조(虛白明照, 1593~1661)




              불법佛法을 지키기 위해 전장에 서다









                                                          ●

                                                        오경후
                                             동국대 불교학술원 교수



















                 조선의 스님들은 불법佛法을 지키기 위해 나라를 구하는데 앞장섰다. 나

              라와 백성이 온전해야 불교가 설 수 있고, 불교가 온전해야 나라와 백성이

              태평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허백 명조 스님 또한 인생의 반을 암울

              한 전쟁과 굴욕 속에서 살다 갔다.


                 대사의 속명俗名은 계국繼國이고 법명은 명조明照요, 성은 이李씨이며 홍

              주洪州사람이다. 허백虛白은 당호堂號이다. 아버지는 통정대부 춘문春文인데 강


              동江東에서 살았고, 어머니는 신평 한씨新平韓氏로 훈련원 주부主簿인 승무承

              武의 따님이다. 일찍이 어머니가 이상한 꿈을 꾸고 임신하여 1593년 11월 초 9

              일에 대사를 낳았는데 골상骨相이 매우 기이하며 귀가 크고 얼굴 아랫부분이 두


              터웠다. 어려서부터 마늘과 같은 냄새가 심한 채소를 먹지 않고 놀 때도 예불禮

              佛을 하였으며 책을 읽으면 한 번에 몇 줄씩 읽었다. 전생前生부터 부처님의 가

              르침과 인연이 깊었다. 스님과 그 교분이 두터웠던 노몽수盧夢脩는 “저 허백당

              의 사람 됨됨이는 천성이 진실하고 평범하였으며, 계략과 사려는 깊고 원대하


              였고, 학술은 고명高明하였으며, 동정動靜은 법도에 딱 맞아서 청허淸虛나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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