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9 - 월간붓다 2021년 7월호 (Vol 4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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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佛法을 지키기 위해 전장에 서다





               장소로 삼았고, 참선 공부하는 학인들을 지도하였다.


                  1658년 불영대佛影臺에 토굴을 짓고 3년 동안 머무르다가, 1661년 9월 8

               일 묘향산 여러 암자를 둘러본 뒤 우물물을 마신 후 “나는 이제 가네.”라고

               말한 다음 보현사에 와서 아픈 기색을 보이지 않고 임종게를 남기고 나이

               68세, 법랍 56세로 열반하였다.





                     刼盡燒三界겁진소삼계                      겁이 다하여 삼계가 소멸해도

                     靈心萬古明영심만고명                      신령한 마음은 만고에 분명하네


                     泥牛耕月色니우경월색                      진흙소는 달빛을 경작하고

                     木馬掣風光목마체풍광                      나무말은 풍광을 끌어오네








                  여러 제자들이 추모하여 슬픔을 머금고 정결하게 한마음을 모아 한 달이

               지난 후 청정무구한 곳에서 화장火葬을 하였는데 상서로운 구름이 모이고 겹

               겹의 바람이 빠르게 불었다, 갑자기 공중에서 쨍그랑 소리를 내며 사리舍利


               여섯 개가 떨어지니 보현사 서쪽 기슭에 함께 석종石鐘을 만들어서 그곳에 봉

               안奉安하였다. 또한 사리 수십 매를 얻어서 보현사 서쪽에 부도를 세웠으며,

               나머지 사리는 금강산·보개산·구월산과 해남 대둔사大芚寺 등 스님과 인


               연이 깊었던 사찰에 부도를 세우고 안치하였다. 스님은 선종과 교종에 두

               루 통한 고승이었으며, 특히 장자莊子의 사상에도 깊은 조예가 있었다.

                  스님의 비문을 찬술한 이경석은 다음과 같이 칭송하였다.





                     왕명 받들어 나라를 함께 지키는 것

                     의리상 어찌 감히 사양하랴?


                     견고한 성을 잃어버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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