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1 - 월간붓다 2021년 8월호 (Vol 40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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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소문으로 불교 억압을 비판하다
년(인조 14) 벽암 스님이 편찬한 것으로 백곡 스님은 『다비문茶毘文』을 합철
하여 징광사에서 간행하였다. 『석문상의초』는 당시 불가에는 스님들의 상
의喪儀에 대한 근본이 없고, 시행되는 것이 규범에 맞지 않다고 지적하였다.
더욱이 중국 불교는 우리나라의 예禮와 부합되지 않으므로 『선원청규禪苑淸
規』, 『오삼집五杉集』, 『석씨요람釋氏要覽』 등에 의거하여 그 핵심 내용을 뽑아
편찬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스님이 이와 같이 여러 사찰에서 다양한 불사
를 일으킨 것은 전란과 소외로 폐허가 된 불교를 중흥시키고자 했던 당시
교계의 염원을 실현시키고자 했기 때문이다.
한편 스님은 1661년(현종 2) 정월에 8,150자에 달하는 상소문인 「간폐석
교소諫廢釋敎疏」를 지어 불교 배척의 부당성을 6개 항목으로 정리하여 올렸
다.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을 예시하면서 불교가 국가의 다스림에 방해되거
나 해롭지 않았다고 하면서 불교의 전래 이후 사찰은 국가를 비보裨補하고,
승려는 국가와 민중에 애국 애민의 종교였다고 강변하였다. 특히 중국의 대
유大儒들이 오히려 불교 이론을 깊이 통달한 점을 열거하여 폐불의 부당성
을 항변하였다. 더 나아가서 유교적 요소로서 불교를 이해하려는 원융적圓
融的 태도를 보여, 유교의 성명설性命說·인의설仁義說을 그대로 불법을 설
명하는 방편으로 삼았다. 그리고 자수원慈壽院과 인수원仁壽院, 봉은사와 봉
선사는 역대 왕실의 내원당內院堂과 외원당外願堂으로, 폐쇄하거나 그곳의
스님들을 축출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하였다.
스님은 의승장으로도 활약했다. 46세인 1666년(현종 7) 조정에서 남한승
통직을 제수받았으나 거절하였으며, 4년 후 50세 때인 1670년(현종 11)에는
팔도도총섭八道都摠攝을 제수받고 3개월 만에 사퇴하였다. 이후 1674년(현
종 15) 「봉국사신창기奉國寺新創記」를 지은 후 ‘겸팔도선교십육종도총섭兼八道
禪敎十六宗都摠攝’직에 재임하였다. 스님의 문집 『대각등계집』에 의하면 자신
이 ‘천리 밖 영남에서 도총섭을 지내느라 십 년 동안 숲에서 다 낡은 승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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