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2 - 월간붓다 2021년 8월호 (Vol 40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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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식을 찾아서 / 백곡 처능(白谷 處能 1617-1680)①





              입었다’고 하여 영남도총섭을 제수받아 10년간 재직하였던 듯하다. 1674


              년(현종 15) 김좌명金佐明의 주청으로 팔도선교십육종도총섭八道禪敎十六宗都

              摠攝이 되었으나 곧 사퇴하고 속리산·청룡산靑龍山·성주산聖住山·계룡산

              등지에서 산림법회山林法會를 열어 후학들을 지도하였다. 스님이 가장 오래

              머물렀던 대둔사大芚寺의 안심암安心庵에서 강법을 개당하자 학도들이 운집


              하였다고 한다. 1678년(숙종 4) 10월에는 백암 성총栢庵性聰 스님이 순천 송

              광사 보조국사비문을 다시 새겨 중건했을 때는 선사로서 참여하는 등 보조

              국사 지눌의 선풍을 현창하고 불교의례의 보급으로 불교계를 수호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스님은 말년인 1680년(숙종 6) 봄에 김제 금산사에서 대법회를 5일간 열

              고, 얼마 후 스님은 세수 64세, 선납禪臘 49세로 금산사에서 입적하였으며,


              모악산 금산사, 대둔산 안심사, 계룡산 신정사(현재 신원사)에 각기 부도탑이

              세워졌고, 1683년(숙종 9) 어록인 『대각등계집』이 각판되었다.

                 스님은 조선 역사에서도 가장 암울한 시기를 살다 가셨다. 전란과 전염

              병, 자연재해 등으로 백성들의 삶은 도탄에 빠졌고, 스님들이 산성축조와


              같은 대규모 토목공사에 동원되어 극심한 고통이 계속되어 환속자가 속출

              하는 시기였다. 그러나 스님은 스승과 함께 폐허가 된 사찰을 중건하고 후

              학을 양성하기 위해 강원에서 사용되는 교재를 간행하기 위해 동분서주하


              였다. 세상을 탓하고 원망하기 보다는 적극적으로 세상 속에 뛰어들어 자

              신의 정체성을 드러냈고, 불교가 지닌 탁월한 가치를 상소문으로 대변하기

              도 하였다. 백곡 처능 스님에게서 조선불교가 지닌 저력과 진정한 수행자


              와 스승의 귀감을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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