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2 - 월간붓다 2018년 11월호 (Vol 3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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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불교 이야기







                   그렇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모든 중생과 자신의 몸이 진여라는 측면에서는 평등하여
                 차별이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큰 방편의 지혜가 있기 때문에 무명을 없애고, 본래의
                 법신에 원래부터 불가사의한 갖가지의 업의 작용이 있어서 진여와 더불어 모든 곳에 편재
                 함을 알면서도 그런 티를 내지 않는다. 왜냐하면, 말하자면 모든 부처님과 여래는 오직 법
                 신法身으로서 지상智相의 몸이다. 제일의제第一義諦에는 세제世諦의 경계가 없어서 (모습이나
                 작용으로) 드러남(施作)이 없지만, 다만 중생이 보거나 들으면 이익을 얻기 때문에 용用이라
                 말할 뿐이다.


                   ② 응신과 보신의 작용


                   진여의 작용에 두 가지가 있다.




                   (1)  첫째는 분별사식分別事識에 의한 것으로 범부와 이승의 마음으로 보는 것을 응신應
                     身이라 한다. (그들은) 이것이 전식轉識으로 인해 나타난 것인 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밖으로부터 온 것이라 여기고, (응신이 가지고 있는) 갖가지 모습(色分齊)를 취하지만 이는
                     다 제대로 알지 못해서 그런 것이다.



                   (2)  둘째는 업식業識에 의한 것이다. 이는 모든 보살이 초발의初發意로부터 보살 구경지에
                     이르기까지 마음으로 본 것이니 이를 보신報身이라 한다. 그 몸에 무량한 모습이 있
                     고 모습에 무량한 상相이 있고 상에 무량한 호好가 있으며, 머무는 의보依報도 셀 수
                     없는 갖가지 장엄이 있다. 여러 장소에 다양하게 나타나 일정한 모습(分齊相)이 없으
                     며, 계셔야 할 곳에 늘 상주하셔서 훼손되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는다. 이러한 공덕
                     은 모두 여러 바라밀 등의 오염 없는 수행(無漏行)의 훈습과 (진여 본각의) 불가사의한 훈
                     습으로 인해서 성취된 것으로 셀 수 없는 즐거움의 기능(樂相)을 구족하였기 때문에
                     보신報身이라 한다.



                   또 범부에게 보이는 것은 곧 추색麤色인데, 6도 중생이 보는 게 제각기 달라 즐거움의 기
                 능樂相을 받지 못하는 것이 여러 가지 종류이므로 응신應身이라 한다. 다음 초발의 보살 등
                 은 진여 법을 깊이 믿기 때문에 보신을 약간만 보는데, (보신 부처님이 가지고 있는) 장엄한 색
      30 30
                 상色相 등등의 현상이란 오는 것도 아니고 가는 것도 아니어서 일정한 모습(分齊)을 떠났으
      교 선 불
                 며, 오직 마음에 의하여 나타나면서도 진여와 동떨어진 게 아님을 안다. 그러나 이 보살은
        이 기 야    아직도 스스로를 분별하고 있으니 아직 법신法身의 지위에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만
                 약 초지인 정심지淨心地에 오르면 보는 것이 더욱 미묘하여 그 작용이 더욱 훌륭해진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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