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3 - 월간붓다 2020년 6월호 (Vol 3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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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허의 불법佛法을 계승하다





                      표는 청허 휴정의 의발이 전해진 후 대흥사를 조선불교의 종원宗院으

                   로 발전시키는데 혁혁한 공헌을 한 종사와 강사다. 이들은 편양 언기와
                                                                                                                  53
                   소요 태능의 후학들이기도 하다. 대흥사뿐만 아니라 이웃 만덕사萬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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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寺의 스님들이기도 하다. 당시 대흥사와 만덕사 간의 교류가 빈번했고

                   만덕사의 승려들일지라도 교학敎學에 탁월하면 대흥사에 머물면서 강

                   사가 되었으며, 마침내 대흥사가 선교학의 종원으로 정착하는데 기여                                                             6 월호

                   한 12강사로 추대된 것이다. 또한 “대둔사의 모든 요사寮舍에 방장

                   실方丈室을 마련하고 강사를 모셔 공부하는 자가 살도록 하고, 명예가

                   혁혁한 강사가 있으면 반드시 모셔와 배우는 이로 하여금 잘 모시게

                   했다”고 한다. 때문에 대흥사는 “화엄대회華嚴大會에 수미首尾가 서로

                   계승하여 여러 스님들의 경 읽는 소리가 두륜頭輪의 산악을 흔들었다.

                   구름이 모여들어 침계류枕溪樓를 삼키니, 드디어 팔로八路의 승려 대중

                   들이 대둔사로 귀의하여 다 종장宗匠이 되었다.” 이와 같은 상황으로

                   보아 대흥사의 화엄강회는 18세기를 중심으로 한 조선후기 불교계의

                   대표적인 화엄학 연구뿐만 아니라 그 발달을 이끌었던 원천이었을 것이

                   다. 1810년대 대흥사가 『대둔사지』를 찬술할 때 다산 정약용뿐만 아니

                   라 만덕사의 아암 혜장과 그 제자들의 기여를 고려한다면 대흥사와 만

                   덕사를 중심으로 한 편양계와 소요계의 우호적인 교류 역시 짐작할 수

                   있다.

                      편양 언기는 위로는 스승의 혜명을 충실히 이어받았으며, 아래로는

                   후학양성을 통해 조선불교를 발전시켰을 뿐만 아니라 현대 한국불교의

                   명맥을 유지하게끔 하는데 공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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